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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 : 요츠바 타마키 x 오오사카 소고

불꽃

 

하리 (@natsu_hosi)

-내용이 조금 잔인합니다. 폭발사고 관련 묘사, 납치 요소 있음. 실제 보석 이름에 설정 날조, 변형 있음.

 

 새벽이 사라졌다. 하늘에 해가 뜨지 않았고, 밤이 계속되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신이 노했다고 생각한 별의 사람들은 기일제(祈日祭)를 지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천문을 관측하던 신관은 어느 날 공표했다. “별의 위치가 밀려나 알바(Alba)는 앞으로 영원히 햇빛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알바의 밤은 영원히 계속되었다. 한때 새벽에 샛별이 가장 밝게 빛나 보이는 별이었으나, 이제 알바에서 새벽과 아침, 낮과 저녁은 사멸해버렸다. 다른 별에선 알바가 상야(常夜)의 별이라며 새로 이름을 붙였다.

 빛과 열이 없으면 모든 생명은 죽는다. 알바의 자랑인 풍부한 광물도 빛이 없으면 채취할 수 없다. 신력으로 빛을 만들고, 불을 피워 열을 얻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알바는 태양과 가장 가까운 열사(熱砂)의 별 에테르노(Eterno)를 침략하기로 했다. 몇 년에 걸친 영토 전쟁으로 에테르노의 왕족은 멸하고, 알바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에테르노에는 힘의 돌인 파이어 아게이트(Fire Agate)을 제외하면 값이 나갈 만한 자원이 없었다. 알바는 광물자원으로 경제와 보석산업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 국토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알바는 에테르노의 영토를 포기하고 고위귀족들을 노예로 만든 뒤 아게이트 스톤을 모조리 자국으로 운반했다.

 알바는 에테르노와의 전쟁에서 얻은 아게이트 스톤으로 인공태양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불완전했다.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밝기는 달빛의 1/5에 못 미쳤다. 또한, 일정 수준의 빛과 열을 한곳에 모으고,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막으려면 아주 강한 신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신권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약화된 상태였으며, 그로 인해 알바는 다른 별에 비해 신력이 절대적으로 약했다. 즉, 언제 꺼질지 모르는 빛이었다.

 인공태양은 왕궁의 바로 위 하늘에 떠 있었고, 왕궁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빛은 희미해졌다. 다이아몬드와 유색 보석으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왕궁은 어둠 속에서도 인공햇빛을 받아 빛났으나 빈민층은 그마저도 보지 못했다. 햇볕을 쬐지 못한 사람들은 병으로 자꾸만 죽어갔다. 거리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백성들의 시체는 쓰레기더미에 섞였고, 골목은 갈수록 악취를 풍겼다. 알바에서 빛은 곧 권력이 되었다.

 요츠바 타마키(四葉環)와 요츠바 아야(四葉理)는 슬럼가에서 자랐다. 알바의 슬럼가는 왕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어둠이 한층 짙을 뿐 아니라 공기가 탁하다. 물과 오물이 섞여 있고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의 부모는 광산에서 일했다. 기술력이 있으면, 마을이나 왕궁의 세공사로 일할 수 있었으나 그의 부모 또한 슬럼가 출신이었다.

 광부들은 좁고 습한 지하갱도에서 안전장치 없이 종일 보석을 캐내며, 캐온 흙과 돌무더기 사이에서 보석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그들은 돌과 보석을 구분할 수 있었으나 그것으로 부를 얻지는 못했다. 보석을 훔쳐 달아난 광부가 있었기 때문에 광산을 소유한 고용주가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값비싼 보석을 많이 채굴하는 날에도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기 힘들었다.

타마키가 아직 일곱 살이었을 때, 마을의 지하갱도가 붕괴되었다. 폭발사고였다. 수십 명이 다쳤고, 200명이 숨졌다. 그중엔 타마키의 부모도 있었다. 타마키는 부모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그들 남매는 호적에 오르지 못했으므로. 자식이 있으면 그 몫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므로, 마을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았다. 하지만 이제 숨을 곳도, 갈 곳도 없었다.

 요츠바 남매는 거리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도시에 흐르는 폐수를 마시고, 그래도 먹을 게 없으면 흙덩이를 입에 쑤셔 넣었다. 노예매매를 하는 건물 근처를 지나다 노예시장에 팔릴 뻔했지만, 우연히 인자한 마을 세공사의 눈에 띄어 그들은 양자로 입양되었다.

 타마키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아야는 눈이 자주 아프다고 했다. 요츠바 남매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근시가 심했으나 아야는 훨씬 심각했다. 근시로 인해 망막까지 악화되어 끝내는 눈이 멀 수도 있다고 했다. 양아버지인 세공사는 아야의 눈에 묘안석(猫眼石, Cat's Eye)을 넣으면 눈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야의 눈의 상태가 실명 직전으로 나빠 누군가 눈을 기증해줘야 한다며 한숨 지었다.

 타마키는 자신의 눈과 아야의 눈을 바꿨다. 그리고 양아버지는 눈에 묘안석을 넣는 불법 수술을 했다. 고양이 눈처럼 일자 백색광이 있는 사파이어는 아야의 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지만, 강한 어둠 속에서는 묘안석이 번쩍이므로 바깥에서 아야는 눈가리개를 해야만 했다.

 묘안석은 눈 치료에도 쓰이지만, 악령을 퇴치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므로 보석 시장에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비싼 값에 팔리는 보석이다. 묘안석이 눈에 있는 걸 알면 아야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수술비로 든 빚을 갚고, 하나뿐인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눈이 먼 타마키는 양아버지에게서 배운 보석 세공술을 더는 쓸 수 없었다. 그는 대신 검술을 익혔다. 열일곱 살의 타마키는 왕궁 근위대에 지원했다. 근위대 최종 시험 당일, 거기엔 알바의 왕이 있었다. 왕은 앞이 안 보이지만, 청각과 후각, 감각에 예민한 타마키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아하하! 개처럼 잘 맡는군. 아주 맘에 들어. 왕의 환심을 산 타마키는 단기간에 호위기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가 변덕이 심한 이유도 있었다. 전의 호위기사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몰래 잠입 임무를 하던 중 타마키는 귀족들이 떠드는 말을 듣게 되었다. 십 년 전의 폭발사고는 폭발물의 실험을 위해 왕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라고. 무기 때문에 백성들을 살상하다니 어지간히, 미친 달이군. 이즈미 미츠키(和泉三月). 왕의 이름을 조롱하며 음지에선 그를 광기의 달, 미친 달이라고 불렀다.

 미츠키는 자주 타마키를 충견에 비유했다. 너는 충성스런 개 같아서 날 배신할 머리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원래는 아야를 위해 자원한 것이었으나 이젠 복수를 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던진 충견처럼 보이기 위해, 타마키는 더 빠르고 강하게 검을 놀렸고, 검집에선 항상 피비린내가 났다.

 그러던 중, 마지막 신관이 숨을 거뒀다. 그와 동시에 신력이 약해지면서 인공 태양의 박동은 점점 느려져만 갔다. 인공 태양을 감당할 정도로 신력이 강한 자는 알바 내에선 찾을 수 없었다.

 미츠키는 신관이 숨을 거둔 밤, 타마키를 불렀다. 지팡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양새는 짓궂은 악동 같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지팡이가 아닌 검이 숨겨져 있는 소드 스틱이었다. 그는 오만한 왕. 폭군. 폭력의 결정체.

 

 “더 강력한 신력이 필요해. 미스텔로의 신관이라면 할 수 있겠지?”

 

 미츠키는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짧게 말했다.

 

 “케인, 이틀을 주겠다. 죽여선 안 돼. 저항하면 손발톱을 빼서라도 내 눈앞에 끌고 와.”

 

 미츠키는 그를 케인(cane)이라 불렀다. 자신은 미츠키가 휘두르는 소드 스틱 자체였다. 그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다가, 때가 되면 검이 되어 모든 것을 베어야 했다. 모든 것은 위대하신 폐하의 뜻대로. 타마키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왕에게 경배했다.

 

 미스텔로(Mistero)에 파란 보름달이 뜨는 밤이었다. 미스텔로의 신관이자, 왕자인 오오사카 소고(逢坂壮五)는 신전의 예배당에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파란 달이 뜨면 신력이 약해지기에 그는 남은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미스텔로의 가장 고귀한 옥(玉)이자, 신력의 원천이며, 신의 태초의 말씀이 전해져 내려오는 임페리얼 제이다이트(Imperial Jadeite)는 소고를 다음 신관으로 지명했다. 그가 신관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신력의 영험함을 지키기 위해, 왕궁과 떨어진 신관에서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해야 했다. 신전 안 깊숙한 곳엔 미스텔로의 태초부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록이 적혀있는 서고가 있었다. 소고는 그것을 관리하고 기록하며 임페리얼 제이다이트의 뜻에 따라 별 전체를 신력으로 보호해야만 했다.

 왕실의 철저한 후계자 교육 속에서 자란 소고였다. 하지만 그는 사실 자유와 음악을 사랑했다. 그의 아버지와 다르게 숙부는 권력을 내려놓고 별들을 떠돌며 음유시인으로 살았다. 그의 숙부는 몰래 리라를 켜며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신비한 동물 이야기, 용감한 기사의 전설, 방랑자와 마법의 샘 이야기.... 가사에 섞인 이야기에 소고는 항상 감정이 북받쳐 올랐고 설렜다. 하지만 이제 그가 듣는 노래에 바람 냄새가 섞인 이야기는 없었다. 죄다 의식 때 연주하는 신곡(神曲)이거나 왕실 연례행사에 쓰이는 음악일 뿐.

 소고의 일을 돕기 위해 왕은 나기 바르할트 폰 노스메이아(ナギ バルハルト フォン ノースメイア)라는 책사(策士)를 붙여주었다. 소고는 그를 나기라 불렀다. 나기는 훌륭한 조언자였다. 모노클 사이로 보이는 푸른 눈에 흰 피부와 금빛 머리를 가진 그는 이미 사라진 별에서 온 외성인(外星人) 이였으나, 미스텔로의 신학·역사·지리 등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지식을 알고 있었다. 그는 8개 성(星)의 언어를 할 수 있었으며, 별 간의 교류 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그가 천문 관측과 기록을 위해, 왕궁으로 간 밤이었다.

 소고는 의식에 쓸 꽃을 고르기 위해 신전 뒤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 한가운데는 맑고 투명한 녹색의 임페리얼 제이다이트 조각이 있었고, 그 사이로 사계절의 꽃이 피어있었다. 소고는 늘 그렇듯 손을 들어 적당한 꽃을 골라 꺾으려 하고 있었다. 달리아꽃을 들어 올린 순간 바람 사이 서늘한 기운이 실려 왔다. 나무 둥치 쪽에 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서 왔나요? 누가 보냈습니까? 모습을 드러낸 침입자는 온통 시커먼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눈에도 검은 가리개를 하고 있었고, 보이는 건 옷에 반짝이는 자색 보석과 푸른빛 머리카락뿐이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죠?

 

 “말하세요. 안 그럼 그대로 영원한 안식에 빠질 겁니다.”

 

 소고는 염동력으로 침입자를 공중으로 띄운 채 질문했다. 나무에 묶여있던 개들이 입을 벌리며 짖고 있었다. 침입자를 무는 신전의 사냥개다. 이빨에는 강한 맹독이 있기 때문에 즉사하거나 운이 좋아도 물린 부위는 마비가 되어 썩어들어간다.

침입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젓거나 살려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설마 이대로 죽을 생각인 건가. 두꺼운 천으로 목과 턱을 가리고 있어 표정이 하나도 읽히지 않는다. 사람이 아니라 도자기 인형 같이 느껴진다.

소고는 신력을 풀어 침입자를 내려놓고 다시 제 눈앞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눈을 가리고 있던 가리개를 끌어 내렸다. 푸른 강물 같은 눈, 나기와는 다르게 하늘을 닮은 눈. 하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다. 이쪽을 보지 못한다. 눈이 안 보이는 건가요?

 침입자를 살피고 있자,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펑―펑―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 하지만 연회의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폭발음이었다. 왕궁 쪽이었다. 소고는 나기가 두고 간 모노클을 눈에 대고 왕궁이 있는 방향을 항해서 초점을 맞췄다. 성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소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력을 쓰려고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팔이 저려왔다. 이상했다. 신력이 통하지 않았다. 개들이 갑자기 얌전해졌다. 침입자의 옷에 달린 보석이 검게 빛났다.

 타마키는 소고를 어깨에 들쳐멘 채 숲을 빠져나갔다. 시퍼런 달빛 아래, 하나로 겹쳐진 그림자가 길고 짙게 드리워졌다. 놔주세요! 제발 소중한 사람들이 저기 있어요 제가 가야 한다고요! 윽, 으... 놔! 내려놓으라고! 소고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울부짖었다. 타마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흔들렸다. 그때랑 똑같아. 폭발사고 때 귀를 찢던 소리. 바람 소리, 돌가루, 흙먼지, 진동….

 타마키는 귀를 찌르는 폭발음 사이에서 물기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안에서 뭔가가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눈앞이 새빨갛게 뒤덮였다.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다 치밀어오른 것은 빗물처럼 뺨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텅 빈 시야로 피어오르는 건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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