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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 : 츠나시 류노스케x오오사카 소고

윤느 (@kusojisang_YUNN)

 빛의 저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려서부터, 생각이 많아질 때면 종종 근처의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하염없이, 해가 뜰 때까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곤 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내가 12살이 되었던 해였다. 아버지를 따라서 베스티아의 무역항인 ‘다단의 항구’ 사람들과 협상을 맺은 미스테로 상인들 과의 정기 회의를 위해 미스테로에 간 적이 있었다. 무역항의 총책임자인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한 공부가 목적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자랑이었고, 나도 그렇게 되길 원했으니까. 미스테로는 시작의 별이라고 불리지만 폐쇄적이고 수수께끼투성이인 보수적인 별이며, 상인들과 몇몇 성민(星民)들을 제외하고는 베스티아 인 뿐만 아니라 다른 별의 인간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처음에는 베스티아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왔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섬세한 사람이었는지 잠자리가 바뀌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몰래 빠져나와 숙소 뒤 편에 있는 작은 산으로 향했다. 베스티아 만큼은 아니지만 나무들 사이에 있으니 낯설지 않은 풀 내음이 불편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작은 산을 신나게 뛰어다니다 별이 잘 보일만한 마음에 드는 공터를 찾아내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우리 별에서 보던 하늘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익숙함에 마음이 놓여 별자리를 헤아리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달빛에 반사된 순백색의 단발의 머리칼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아이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가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늦은 밤에 산에 오게 된 이유는 묻지 못 했지만 소년의 이름은 소고였고, 나보다 세 살이 어렸다. 베스티아의 성민인 나를 거리낌 없이 살갑게 대해줬다. 베스티아로 돌아가는 날, 소고는 다음에 또 보자며 미스테로에서 장신구를 제작할 때 흔히 쓰이는 ‘별의 파편’을 내게 주었다. 갖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여기까지가 나와 소고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를 따라 미스테로에 갈 때마다 소고를 찾았다. 미스테로에 가는 건 1년에 한 번 정도에 머지않았지만,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소고한테 점점 빠져들었다.

 

 어느덧 18살, 성인식을 앞두고 만난 소고는 몇 달 만에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언제나 밝게, 다정하게 조곤 거리던 귀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딘가 슬픈 표정의 감정 없는 인형이었다.

 “네가 아는 소고는 이제 없으니까. 더 이상 나를 찾지 마.”

 소고는 당황한 내게 크기에 비해 묵직한 작은 상자를 안겨주고는 베스티아에 도착한 뒤에 열어보라며 짧게 덧붙이고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그날 이후, 미스테로에 가도 소고를 만날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채 방황하다 베스티아에 도착해서 상자를 열어보니 홈이 파여 있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와 나뭇잎 모양의 귀걸이 한 쌍이 들어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정신 차리자. 머리 쓰는 일은 이오리한테 맡겨볼까. 이오리는 나보다 네 살이 어린, 내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소년이다. 토끼의 피가 흐르는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청각과 두뇌회전이 빠른 것을 이용해 베스티아 제일의 정보상으로 통하고 있으며, 천재소년이라고 불린다. 본인은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지만 내심 뿌듯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오리 한테는 종종 소고에 대해 이야기해줬기에 쉽게 설명할 수 있었고, 그를 내 방으로 불러들였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게 하지 마시죠. 하고 퉁명스레 대답했지만 뱉는 말이랑은 다르게 좋은 녀석이니까.

먼저, 귀걸이를 집어 들고 관찰하던 이오리는 나뭇잎 모양의 장식 뒷면에서 ‘OSAKA’ 라는 글씨를 찾아냈고 미스테로의 ‘오오사카’ 라는 대대적으로 내려오는 신관 가문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성옥신앙을 깊게 믿는 미스테로의 시작과도 같은 존재. 왕 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신관의 말은 곧 신, 별의 뜻이었다. 는 것은 옛날 말이고. 이오리가 들은 바로는 지금의 신관은 그저 왕의 꼭두각시. 왕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기도를 올리는 이름뿐인 껍데기라고 했다. 미스테로의 성민들만 알지 못하는 미스테로의 비밀 중 하나.

 

 베스티아의 성민들은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혼인을 할 수 있게 된다. 긴 수명에 비해 이른 혼기(婚期). 소고는 가족 얘기를 꺼내면 표정이 어두워지며 말을 아꼈으니까. 나는 멋대로 고아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 성인식이 가까워져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왔고, 모조리 거절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소고를 만나면 고백을 하려고 했었다. 하기도 전에 차여버렸지만.

 

 이오리가 귀걸이를 더 살펴보는 동안, 상자 안의 돌멩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문득, 소고와 처음 만난 날 받았던 책상 서랍 안에 소중히 모셔 뒀던 ‘별의 파편’ 과 색이 같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꺼내 와 상자 안의 돌멩이의 홈에 맞춰 끼워 넣어 보았다. 거짓말 같게도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딱 맞아 들어갔고, 은은하게 빛을 뿜어냈다.

 

 그냥 보석으로 흔히 쓰이는 별의 파편이 아닌, 신관들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성옥(星玉) 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이오리 역시 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눈을 크게 뜨고 소고가 주었던 상자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 숨겨져 있을 겁니다.” “뭐가?” “소고 씨는 당신이 싫어진 게 아니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말을 마치자마자, 찾았다. 하고 개운한 소리를 내며 상자 귀퉁이에 작게 접혀져 있던 쪽지를 집어 들었다.

펼친 쪽지에는 단 세 글자. ‘사랑해.’ 나도, 이오리도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소고 씨는 신관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네요.”

 “… …”

 “정신 차리시죠. 이제 시작입니다. 신관은 혼인을 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당신에의 고백은 반역과도 같은 거죠. 차갑게 대한 건... 아무래도 당신을 시험해 본 것 같네요.”

 “내 몸에 흐르는 피는 늑대의 피야. 늑대는 평생 한 반려만을 사랑한다고.”

 “그걸 누가 모릅니까. 데리러 오라는 거잖아요. 아시겠습니까? 류."

 “전쟁이 일어나진 않을까?”

 “미스테로는 성옥신앙을 깊게 믿는 별입니다. 적어도 성민들에게 별과 신관은 절대적인 존재예요. 아무리 꼭두각시라도 신관을 도둑맞았다고 쉽게 발설하지는 못할 겁니다. 고고하신 자존심 문제도 있고요. 미개한 베스티아 놈들에게 신관을 도둑맞았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껍데기뿐인 꼭두각시이니 다른 꼭두각시를 구해서 앉혀 두겠죠.”

 

 이오리의 단호하고 명쾌한 대답. 덕분에 마음이 좀 놓였다.

 

 나뭇잎 귀걸이는 오오사카 가(家)의 사람이라는 의미. 미스테로의 복장만 갖추면 아마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오오사카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력으로 인해 외부의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는 신전이더라도 신관의 신력으로 만들어진 성옥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겠지. 소고가 줬으니까.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항구의 총책임자가 되는 것은 이오리에게 맡기기로 했다. 똑똑한 녀석이니 잘 할 수 있을 거다.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이오리라면 아버지도 믿고 맡기실 테니.

 

 신관 납치 계획이 완성되었다. 소고가 18살, 성인이 될 때까지 앞으로 2년 반. 적어도 미스테로와 베스티아를 떠나 부족하지 않게 생활할 돈을 모으고, 체력을 길러야 해. 다른 별의 인간과 비교해서 신체적 조건에서 절대 뒤쳐질 일 없는 베스티아의 인간이지만, 혼자 도망치는 게 아니니까. 소고를 지키며 도망쳐야 하니까. 더욱 몸을 단련시켰다.

 

 그렇게 2년이 조금 더 지났고, 미스테로에의 배를 기다리며 이오리를 찾았다. 좋지 않은 말을 들을 게 뻔하지만. 그동안 신세 졌고, 평생 갚지 못할 빚을 지게 되었으니.

 

 "베스티아를, 아버지를 잘 부탁해."

 "찾아와서 하는 말이 고작 그겁니까? 뻔뻔하네요."

 "새삼스럽게. 이오리는 믿으니까."

 "흥, 몸이나 조심하세요."

 "네 성인식은 보고 싶었는데. 내년이잖아."

 "됐습니다. 이제 배가 들어올 시간이니 가보세요."

 "응,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고마웠어."

 

 마지막으로 이오리의 터번 위로 머리를 헝클이듯 슥슥 쓰다듬었다. 애 취급하지 마라며 투덜대는 이오리의 눈가가 조금 젖어 있었다. 나는 이오리를 뒤로 하고 항구를 향해, 미스테로를 향해. 너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의 3년 만에 오는 미스테로는 언제나와 같았지만, 혼자서는 처음 오는 장소였기에 조금 낯설었다. 신전은 항구가 있는 마을에서 가깝지 않으니 서둘러야겠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미스테로의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뭇잎의 귀걸이를 걸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마을을 벗어나 산과 들, 강을 지나자 우아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소고의 성인식, 신관의 취임식은 시작되기 전이었고, 답지 않게 긴장이 되었다. 실패하면 끝이다. 미스테로 복장을 입고 있으니 빨리 들키지는 않을 거야. 껍데기뿐 이더라도 새로운 신관의 취임 날이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기 전 품에 넣어뒀던 성옥을 꺼내 기도하듯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심호흡을 한 뒤, 신전의 결계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을 거쳐 단상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단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소고가 보였다. 찾았다. 정면돌파 밖에 떠오르지 않아 성큼성큼, 한 발짝 두 발짝. 단상 쪽으로 다가가 소고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순간 놀란 듯 커진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데리러 왔어. 소고."

 “오오사카입니다만, 생각보다 늦었네. 안 오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어.”

 “주인공은 원래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거 잖아?”

 

 감정 없는 인형 같던 오오사카는 침입자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의 뺨을 감싼 채 끌어와 입을 맞췄다. 신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어붙은 채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 순간. 미개한 베스티아의 짐승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둘을 향해 사방에서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류노스케는 소고를 가볍게 안아 올리고, 출구 쪽으로 향해 돌진했다. 신전의 결계만 믿고 경비는 허술하게 둔 덕분에 조금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신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설마 정말로 성옥을 손에 넣은 다른 별의 인간이 신전에 접근을 할 줄은 몰랐을 거다.

 소고가 가볍기도 했고, 짐승. 그것도 늑대의 피가 흐르는 류노스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테니까.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병사들을 따돌리고는 더 이상 쫓아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멈춰 서서 소고와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옷을 갈아입고, 미스테로를 벗어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당분간은 베스티아 로도 돌아갈 수 없을 테니 둘이서 느긋하게 여행이나 다니자.

 

 빛의 저편에선 두 사람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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