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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 : 로쿠야 나기 x 오오사카 소고

별의 이야기

슈에 (@suihin)

별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다.

만물의 근원이자 그들을 다스리는 '별'. 그리고 '별'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별의 아이'.

별을 섬기는 자들은 각자의 별에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문명을 이뤘지만 염원하는 건 같았다.

'별의 아이'의 탄생. 그리고 그 아이가 가져올 기적.

긴 세월이 흘러, 드디어 '별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에 관한 신탁이 내려왔다.

[['별'을 섬기는 자들은 들으라.

[미스테로]에 태어난 새로운 아기 신관이 나의 아이이니라.

이는 그가 나를 대신하여 기적을 일으킬 것임이니.

'각성'의 날까지 그를 보호하라.]]











*

"처음 뵙겠습니다 영예로운 [미스테로]의 대신관이시여. '별의 아이'이시여. 저는 새로 들어온 견습 신관 '나기 폰 발하르트 미스테로'입니다."

"대신관인 '소고'입니다. 별의 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받긴 했지만 눈 앞의 금발의 미남자가 소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스테로의 성을 가진 이 남자는 분명 국왕의 둘째 왕자.

[미스테로]는 왕권과 신권이 나뉜 제정분리국가. 예전에는 나름 왕과 사제가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았으나 '별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별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백성들의 모든 관심이 신전 쪽으로 가자 위기감을 느낀 왕실에서 신전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사건건 이쪽 일에 참견하고 방해하더니 이젠 대놓고 자기 아들을 첩자로 심는 건가. 어디까지 할 속셈이지 그 왕은.'

이런 상황에서 왕의 총애를 받는다는 둘째 왕자가 신관이 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때문에 나기를 보는 소고의 눈빛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기는 그런 소고를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대로 매우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우고."

이를 말하며 나기는 무릎을 꿇고는 소고의 손을 덥석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무..무슨..!!"

"? 오우 이것은 궁에서 충성을 맹세할 때 하는 제스처 입니다. 방금 전 저는 저의 모든 걸 당신께 바치겠다는 프로미스를 한 것이죠."

신전 안에선 궁의 예법 따위 해봤자 유효하지 않다. 소고에게 있어 방금 전 나기가 자신한테 한 것은 신의를 가장한 추행일 뿐인 것이다.

불쾌함을 애써 숨기며 소고는 제 손을 빼냈다.

"마음은 기특하지만 당신은 이제 신전의 사람입니다. 궁의 예법은 치워두세요. 그리고 하급 신관이 상급 신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 기본 예법도 모르는 주제에 신관 시험을 통과했다니. 분명 국왕의 입김으로 들어온 거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신전을 더 옥죌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눈 앞의 미남자를 완전히 첩자로 결론낸 소고는 노골적으로 그를 차갑게 내려보았다. 그러나 나기는 더 화사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나의 신관이시여."









*

견습 신관들은 돌아가며 대신관의 시중을 들곤 한다. 취지는 그 시간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견습 신관이 신전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자는 것. 그러나 소고는 나기가 자신의 시중을 드는 차례가 와도 그를 철저히 무시하고 혼자서 업무를 보았다.

"대신관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아니 없습니다. 마음은 고맙습니다 나기 군."

'국왕의 첩자에게 신전 일을 보일 수는 없지.'

다음 번에도. 그 다음 번에도. 소고는 철저히 나기를 냉대했다. 그럼에도 나기는 인상 한번 쓰는 법이 없었다. 생각보다 끈질기다고 소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소고와 달리 신전의 다른 사람들은 나기에게 호의적이었다. 특유의 밝은 성격과 아름다운 미소로 나기는 신관들과 사제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순식간에 신전의 인기 신관이 되어있었다.

"나기 신관님 오늘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프 콜스. 저로 괜찮다면 언제든지입니다!"

"잘됐다! 나기 신관님은 언제나 상냥하셔서 좋아요!"

"얼굴도 너무 잘생기셨어요!"

어느 새 추종자까지 생겼는가.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소고는 기가 찼다. 한참 신학 공부에 매진해야 할 사제들에게 지나치게 친한 척 하는 그의 모습도 꺄꺄거리며 좋아하는 사제들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때, 소고의 불쾌한 표정을 감지했는지 나기가 갑자기 소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신관님도 들어주시겠습니까? 저의 설교."

"아니...난..."

"세상에 대신관님도 같이 봐주시는 건가요?"

"오늘 운 좋다!"

사제들 앞에서 견습 신관과 불화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없었다.

"...그러도록 하죠. 그러고보니 나기 신관의 설교를 아직 못 들어봤었네요."

거북한 소고의 속을 놀리기라도 하는지 나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

"성(星)서에는 훌륭한 말씀과 아름다운 일화들이 가득하지요! 벗뜨 전부 고어로 적혀 있고 번역본에도 어려운 어휘가 많아 일반인이 읽기에는 많이 버겁습니다. 그래서 시중에는 성서의 내용을 쉽게 쓴 이야기 책들이 나와 있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제가 어릴 때부터 제일 좋아하던 책을 여러분과 쉐어ー해보고자 합니다!"

나기는 품에 안고 있던 서적들 가운데서 얇고 색이 다채로운 책 하나를 꺼냈다.

"매지컬...코코나......?"

"매지컬☆코코나!!!! 줄여서 매지코나!!!! 여러분도 부디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깜짝 놀랄만큼 큰 목소리에 사제들도 소고도 순간 당황했다. 평소 나기에겐 오버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이렇게나 흥분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때문에 그 정도의 내용인가 하고 소고도 살짝 흥미를 보였다.

"코코ー나는 여기 그려진 소녀로 별의 축복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녀 자신에게도 별의 힘이 있죠. 그 힘으로 기적을 일으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나기의 코코나에 대한 열정이 담긴 스토리텔링에 사제들은 어느 새 빠져들었다. 소고 역시 설교 능력은 상당하다며 마음 속으로 후한 점수를 매기려던 찰나였다.

'별의 신탁 아래 태어난 코코나...별의 힘...기적......윽...우욱...!'

순간 소고는 헛구역질을 할 뻔했다. 필사적으로 겉으로 티를 내는 건 막았지만 역겨움과 매스꺼움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지금 이야기에 나오는 코코나는......

"예스. 눈치채셨을 것 같지만 코코ー나는 '별의 아이'가 모티브입니다."

그만.

"별의 신탁 아래 태어나......"

그만해.

"...별의 힘을 가진 별의 아이가......"

그만하란 말이야!

"....어떤 기적을 보여줄 지는......."

쾅!

큰 소리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소고가 그대로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

10살이 되던 날 처음 신전 밖으로 나와 왕궁에 불려가 국왕을 알현했었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올려다 본 국왕이란 남자는 거대하고 한없이 차가웠다.

"기적을 일으켜 보거라."

"네?"

"별의 힘을 타고 났다지? 그럼 그 힘으로 기적을 일으켜 보란 말이다."

"저...그게......."

"소고 님은 아직 각성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하. 그래서 지금은 할 수......"

"누가 끼어들라고 했지?"

나를 감싸려던 당시 대신관님을 국왕이 싸늘하게 제지했다. 그러고는 마치 나와 자신만이 이 공간에 있다는 듯 나와 눈을 맞췄다.

봄인데 한기가 느껴졌다.

신전에서 온실 속 화초로만 자랐던 나는 그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걸 느꼈다.

살의. 적의. 미움. 증오.

'이런 건 몰라. 싫어.'

불쾌함과 위압감에 결벽 증세를 보이듯 난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구역질을 했다.

"웩..! 웨엑...! 크억....!!"

"기적은 커녕 이런 한심한 애송이를 갖다가 추양하다니 신전 녀석들도 결국 한물 갔군."

"헉! 허억..! 흐어..헉......"

"성년이 되어서도 기적 하나 일으키지 못하면 다들 알게 되겠구나. 네가 거짓말쟁이 라는 걸."

아니야 아니야.......

뭐라고 반박해보고자 고개를 들었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만 그때 눈에 들어온 그의 아름다운 금발이 너무나 차가워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는 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그 때의 그와 똑같은 금발을 가진 남자가 또다시 나를 압박한 것이다. 별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별의 아이. 그러나 나는 성년이 얼마 안 남은 지금까지 기적도 별의 힘도 느껴본 적이 없다.

거짓말쟁이.

그도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정말로 거짓말쟁이인가. 그러면 나는.......

"소우고!!!"













*

어느 새 따라온 나기가 간신히 소고를 따라잡아 그의 팔을 붙들었다. 소고의 얼굴은 너무 창백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헉헉...겨우 잡았습니다."

"...놓아줘."

"안색이 안 좋습니다. 어서 치료의를..."

"놓으라고 했잖아!"

소고는 있는 힘껏 손을 뿌리쳤다. 그의 태도에 나기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알겠다며 손을 물렸다.

"너, 어째서 신관이 된 거지?"

"당신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거짓말 하지 마. 역시 국왕인가? 그가 널 첩자로 보내......"

"국왕은 제가 신전으로 귀의하는 걸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여기에 와 신관이 된 건 당신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아까 말했듯 어릴 적부터 저는 코코나를 동경했습니다. 그녀의 탄생과 그녀가 만드는 기적에 매료되었고 진짜 '별의 아이'인 당신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

"당신의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각성하여 기적을 보여주는 그 날......"

"돌아가."

"왓...?"

"네 말이 사실이라고 쳐도 말이야, 나는 코코나가 아니야. 허울 뿐인 별의 아이. 기적 같은 건 일으키지 못 해."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각성을 하지 않..."

"곧...성년이 돼. 성년이 되어서도 아무 것도 못 한다면...네 아버지 말처럼 다들 나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겠지."

"소우고...!"

"실망하기 전에 미리 등 돌리는 게 좋을 거야. 돌아가 왕자님."

그 말을 끝으로 소고는 그대로 걸어갔다. 자신의 존재에 회의감을 느끼다 못해 좌절해버린 소년의 뒷모습을 나기는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트라우마를 건드리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많은 걸 바라려던 게 아니었다.

그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며 그가 일으키는 기적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가 행복해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슬픈 얼굴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은 분명 모두를 놀라게 할 기적을 보여줄 겁니다. 그리고...'

ー그 때에 내가 당신 곁을 지키고 있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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