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카이도 야마토 & 나나세 리쿠
Write. 하운(@0707_dis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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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 야마토 (14살) & 리쿠 (10살) / 현재 - 야마토 (25살) & 리쿠 (2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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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 한방울은 기억을 담고 흐르고 흘러
시냇물이 되고 계곡물이 되고 강물이 된다.
그것이 점차 커지면 마침내 천하를 아우르는 바닷물이 된다.’
야마토는 책을 덮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삐삑 하고 소리를 내며 달구어진 커피 포트에서 달큰하고 씁쓸한 커피의 향기가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아이돌리쉬 세븐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한 것도 벌써 3년. 멤버들도 이제 서로 각자의 일을 하며 지내야 해서 더 이상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지 않은 것도 벌써 1년.
연락이야 누가 보면 친밀한 가족인 것처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많이 하고 있다.
그래도 직접 얼굴보고 몸 부대끼며 살던 그 때가 그리워지는건 어쩔 수 없는 탓이다.
아이돌리쉬 세븐의 리더로써 여러 멤버들이 걱정되고 신경쓰이지만, 무엇보다 더 신경쓰이는 건 리쿠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꽤나 심각한 천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구보다도 반짝거리며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마음으로 이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임하고 있는 아이가 리쿠다. 그래, 이오리가 스치듯이 말했던 것처럼 리쿠는 정말 ‘유성’같은 아이다.
리쿠를 생각하면 야마토는 한없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어딘가 그리운듯 하면서도 애절, 기쁨의 감정이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눈빛이 야마토가 더 성장하면서 깊어진 눈동자에 서리었다.
그 때가 언제였더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학교 시절로 가게 된다. 나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13살의 어린 남자아이였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대학교 부속 중학교라 왼쪽 방향으로 10분 걸어가면 대학 병원이 있었다.
학교 생활이 어떻냐고 물으면 그저 나름대로 좋았다. 등교를 하면 장난스럽게 등을 치며 인사하고 수업 시간에는 졸거나 점심 시간이 되면 빨리 도시락을 해치우고 축구공을 이리저리 이끌며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았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바쁜 일상을 보내면 언제나 그랫듯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돌아온다. 친구들이랑 작별 인사를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에 돌아가는 길에 걸음을 옮긴다. 집에 가는 길에는 항상 그 대학 병원이 있어 지나쳐야 한다. 친구들 말로는 이 대학 병원 정문에 있는 벤치에는 새빨간 머리의 남자 아이가 무척이나 즐거운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선율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난리였다.
정작 내가 집에 갈때는 한 번도 안보이면서 내심 좀 아쉬운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병원 앞을 지나가려는데.
들렸다. 정말 들렸다. 그 아름다운 노래가 내 귀로 흘러들어와 따뜻하게 내 뇌를 녹이듯 머리 안을 돌고 돌았다. 정신 차릴 수 없는 목소리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천사가 있었다.
병원 생활 탓인지 또래 아이보다는 작은 체구. 병원에 오래 있었는지 하얀 피부. 피부에 비해서 너무 대비되는 물감같은 새빨간 머리카락. 머리카락을 꼭 닮아 보석같은 붉은 눈동자.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있는 것을 모르는지 그 아이는 벤치에 앉아서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악마, 아니 천사에 홀린다는게 이런 느낌이라고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홀려서 무심코 말을 걸고 말았다.
“저기 너.”
“네?”
낯선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환히 웃었다. 그리 밝게 웃으며 즐거운 눈을 가지는 아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까봐 두려웠지만, 두려우면 뭐 어때. 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내 가슴께를 간질거리고 있었다. 생소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신비한 느낌이라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아이와 길게 눈 마주치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뛰쳐나가버렸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이리 많은 시간에 난 그 병원 앞을 계속 서성거렸다. 어쩌면 그 아이를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그 아름답고 기이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와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푸르런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일 때면 날씨가 쌀쌀해진 탓인지 그 아이가 생각났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보이는 붉그스름한 석양에 난 그 아이가 생각났다.
세월이 흘러 계절이 바뀌고,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해도 단 한 번도 그 아이는 병원 정문 밖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노래 부르지 않았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해도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나는 덤덤히 그 날 처럼 병원을 지나쳐가며 태양과 같은 그 아이를 떠올리곤 했다.
어른이 되고 나는 배우계에 뛰어들었다. 뒤에서는 촬영 스탭들, 배우들이 치바 사롱을 얘기하며 떠들어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나는 이뤄야할 목표가 있으니까. 나는 꼭, 원수를 되갚아야 하니까. 배우계에서는 계획이 잘 진행되지 않겠다 싶어 곧장 방향키를 틀어 아이돌로 카드를 바꾸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이라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알고, 또 쉽게 성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TRIGGER’ 라는 그룹으로 성공한 야오토메 사무소의 오디션이 열리길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디션이 안 열리자 나는 다른 사무소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타카나시 사무소에서 오디션을 연다기에 나는 재빨리 이력서를 작성하여 팩스로 보낼 준비를 하였다. 이상하게도 참 좋은 예감이 든 건 그저 우연일까.
오디션에 합격하고 첫 모임은 타카나시 사무소 연습실이었다. 예상보다 조금 빠른 시각에 당황하여 허둥지둥 대다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지난 시간에 타카나시 사무소 연습실 문 앞에 도착했다. 심호흡을 한번 길게 내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오, 새로운 사람이 또 들어왔네?”
문을 열자 보이는 주황색 머리의 작은 소년은 나를 먼저 반겨주었다. 일단 첫인상이 중요하니 사람 좋은 미소로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니카이도 야마토, 22살이야.”
“난 이즈미 미즈키, 21살이야. 잘 부탁해.”
시원시원한 미소를 씨익 하고 지으며 손을 내미는 미츠키가 21살 이었다니. 고작 나하고 1살 차이밖에 안 나네? 아 소년도 아닌가. 내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니 미츠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또 씨익 웃었다.
“이쪽이 내 남동생, 이즈미 이오리야.”
“안녕하세요.”
형과는 달리 굉장히 차분해보이는 동생이군. 가볍게 이오리와 목례를 하고 천천히 이제부터 쓸 연습실을 돌아보는데 순간, 나는 숨을 멈추었다.
기억에 아직 뚜렷하게 남아있는 붉은색이 거울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세월이 지금까지 지나는 동안 난 한 번도 그 붉은색을 잊어버린 적은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붉은색은 태양과도 같았고 문득 가을이 되어 쌀쌀해진 날씨에 창문 밖을 바라보면 단풍나무가 예쁘게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그 아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도 이제 어른인지라 본심을 숨기고 태연스레 붉은 소년에게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했다. 이름은 나나세 리쿠. 18살. 그 때도 어림 짐작으로 4살에서 5살 정도 어려보인다고 생각했으니 얼추 맞는 나이다. 무엇보다도 저 특이한 앞머리는 그 아이만의 스타일 이었으니 확신이 섰다.
“난 니카이토 야마토. 근데 리쿠, 혹시 우리 어디서..”
“네?”
“으흠,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쓰지마.”
“아, 네.”
역시나. 하긴 그 정도 나이 때 나를 만났는데 기억 못할만도 하겠지. 리쿠가 나를 기억 못해도 괜찮았다. 그저 이 더러운 목적으로 열정이 넘치는 멤버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이 스스로가 역겹게 느껴질 정도로 모두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조금 어리버리해 보이는 매니저가 고개를 숙이며 4명만 데뷔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해듣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리쿠를 바라보았다. 이 곳에 남아서 나같은 인간이 바라볼 수도 없을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또 높게 비상하여 날아가야하는 작은 새가 있다. 차마 그 새에게 날지마렴. 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는 죄인이어서 깨끗이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다.
나나세 리쿠는 그 누구보다도 빛날 수 있는 보석이다. 그 보석을 한층 더 순도가 높게, 광채가 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진흙 덩어리인 내가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쉽게 오디션을 포기하였다. 리쿠의 노래를, 리쿠의 춤을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것이 한이라면 한이 되겠지만 그래도 어린 날의 나처럼 붉은색을 떠올리며 그를 그리워하며 재회할 날을 갈망하며 지내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했다.
4명만 붙을 수 있다는 말은 테스트 였는지 7명 전원이 붙었다. 리쿠를 옆에서 볼 수 있구나. 그 천상의 목소리를. 리쿠가 가지고 있는 청량한 목소리를. 해맑고 순진무구한 맑은 눈동자를. 난 볼 수 있구나. 묘하게 간질거리는 가슴께가 신경쓰였다.
아이돌리쉬 세븐의 리더로 생활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매니저가 3천명을 수용할 수 았는 큰 홀을 빌렸는데 실제로 온 관객은 9명 정도. 그럼에도 우라 아이돌리쉬 세븐은 기쁘게, 활기차게 몬스터 제너레이션을 관객들 앞에서 선보였다.
처음 라이브를 해내었을 때의 쾌감이 전신을 타고 흘러가는 감각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오직 우리 멤버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항상 무대를 할 때면 멤버들은 리쿠만을 바라보고는 한다. 아이돌리쉬 세븐의 센터인 리쿠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끌림을 만들어내어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강한 힘이 있다.
이 노래를 이끄는 사람은 나야. 나를 봐.
라고 모두에게 강렬하게 외치는 것 같은 리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모두가 자석처럼 이끌려져가고 만다. 엇 하는 사이에 리쿠의 해맑은 미소에 모두가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아이돌리쉬 세븐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리쿠의 인기는 엄청나게 폭등하고 있는 추세였다. 이제 숙소 활동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우리는 더욱 성장해갔고 개인적인 스케줄을 할 때가 더 많아졌다.
이오리는 리쿠의 전담 작곡가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리쿠의 솔로곡 ‘会いたい、会いたくない(만나고 싶어, 만나고 싶지 않아)’도 이오리의 작품이었다. 작곡 이외에도 이오리는 학교 교복 CF를 찍으면서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오리는 추후에 리쿠와 같이 부르는 듀엣곡 ‘1分1秒でも早く(1분 1초라도 빨리)’ 라는 곡을 발표할 계획이다.
미츠키는 MC 시모오카를 따라서 자기가 MC인 프로그램을 3개나 하고 있다. 제 2의 MC 시모오카라고 불릴 정도로 미츠키의 예능 진행은 재밌다. 미츠키는 이번에 우유 CF를 찍게 되어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타마키는 이제 어른이 되어 여러 CF 제의가 들어왔다. 시계, 정장, 차. 가장 히트를 쳤던 CF는 시계나 정장이 아닌 킹푸딩 CF가 히트를 쳐 나도 편의점에서 타마키의 사진이 들어가있는 킹푸딩을 산 적 있다.
소고는 FSC 그룹의 회장의 아들인 사실이 보도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지만 아이돌로써 작곡자로써 열심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모습에 그 논란은 금방 사그라들고 말았다. TRIGGER에게 자기가 작곡한 곡을 주고 그 곡를 노래하는 TRIGGER 멤버들과 녹음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소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나기는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다. 도쿄뿐만 아니라 L.A , 런던, 밀라노 런웨이에서 통합적으로 뽑힌 남자 모델 1위를 당당히 차지한 나기는 받은 상금으로 매지컬 코코나 굿즈를 사고 일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였다고 뉴스 기사에 날 정도였다. 매지컬 코코나를 그린 원작자와 악수를 하며 운 나기의 사진은 내 핸드폰 속에 두고두고 볼 사진 중에 하나다.
마지막으로 리쿠는 세계를 아우르는 평화의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리쿠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환하게 웃어보일수록 세계는 놀라고 웃으며 때로는 울며 그와 함께 감정을 공유했다. 리쿠의 형인 TRIGGER의 멤버 쿠죠 텐과의 형제 관계를 매스컴에 밝히며 리쿠와 쿠죠 텐이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웃은 사진은 그동안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듯 무척이나 시원하고 후련했다.
나나세 리쿠.
리쿠.
아이돌리쉬 세븐의 센터.
내가 어찌 너를 잊을 수 있을까.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여리고 가는 목소리로 천상에 닿을 듯한 노래를 부르던 너를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달구어진 커피 포트를 빼내어 하얀 머그컵에 졸졸 따라낸다. 커피 향기가 더욱 진하게 내 코를 건드린다. 커피는 지독하게도 쓴 맛이었다.
가만히 의자에 기대어 잠시 너의 생각을 해보면 이렇게 긴 시간을 소모하게 되니 나도 참 엄청나게 신경을 쓰긴 한가보다.
리쿠는 모를 것이다.
내 감정이 어떠한 지.
또 내가 너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순진하고 해맑은 리쿠는 모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작은 물 한방울은 기억을 담고 흐르고 흘러 시냇물이 되고 계곡물이 되고 강물이 된다. 그것이 점차 커지면 마침내 천하를 아우르는 바닷물이 된다.’
물이 곧 내 마음이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래를 부르던 리쿠를 보고 작은 물방울이 하나 톡 떨어졌고 리쿠를 그리워하던 시간에는 물방울이 하나 둘씩 전부 후두둑 떨어져 시냇물을 만들었다. 아이돌리쉬 세븐으로써 리쿠를 만나고 그 시냇물이 점점 더 커져서 내 마음은 비로소 바닷물이 된 것이다.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다 비워내고 난 뒤에야 나는 오늘 스케줄을 소화하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내가 주연으로 맡은 영화 ‘先にある世界(먼저 있는 세계)’의 대본을 챙기고 현관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섰다. 리쿠의 특기인 화사한 웃음을 무심코 따라하며 오늘도 나의 세상이자 나의 전부인 바닷물을 끌어안은채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