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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 타마키

Write.  래생(@raesang_in)

*

-17살의 타마키가 자신의 어린시절로 타임 워프 한 이야기 입니다!

-남자=17살(현재)의 타마키/ 타마키=10살(과거)의 타마키

-타마키의 아버지는 인성이 매우 좋지 않다는 설정입니다.. 전 래빗챗을 다 못읽었기에, 설정 충돌이 일어나는 장면은..죄..죄송합니다..!

*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익숙하게 공원 한구석에 놓여있는 벤치를 찾았다. 페인트가 묻어나오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코를 찌르는 석유냄새를 보아하니 아이가 찾아오지 않은 몇일 사이에 새로 페인트를 칠한 것 같았다. 오래되고 잔디가 무성한 공원이었지만 보수는 종종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벤치에 던져놓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니 까무룩 기절 할 것 만 같았다. 폐로 차오르는 페인트의 옅은냄새 마저 고마웠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겨우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어스름한 새벽의 기운이 남아있는 탓 인지 공원에는 타마키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찾아오지 않은 듯 했다. 혼자라는 사실에 마음을 놓은 타마키는 벤치에 기대어 허공을 쳐다보았다. 붉은 기운이 조금 섞인 어두운 하늘에는 이른 봄을 알리려는 듯 작은 꽃가루들이 하늘하늘 떠다니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봤다면 탄성을 내뱉으며 기뻐할 정도의 아름다움 이었지만 타마키에겐 상관없는 일 이었다. 하늘에 떠다니는 꽃가루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아직도 귓가에 찢어지는 호통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너 같은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쓸모없는 것.

 

 

두 발을 휙휙 흔들며 떨어지는 꽃가루들을 바라보고 있던 타마키는 욱씬거리는 발목을 째려보며 이내 신경질적으로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퍽, 하고 작은 머리통이 벤치에 부딪쳤다. 집에서 급하게 빠져 나오던 중 삐끗한 발목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히 부어오르고 있었다. 오랜 기간 키워진 맷집으로 인해 통증에는 익숙했지만, 걱정이 많은 엄마와 동생을 신경쓰이게 하고싶지 않았다. 즉, 발목의 붓기가 가라앉기 전에는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발목이 어느정도 되돌아 올 동안 적당히 벤치에 누워 눈이라도 붙이려던 타마키의 야심찬 계획은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틀어지고 말았다. 머리 뒤로 팔을 끼우고 편안하게 눈을 감자, 방금 까지 인기척 하나 없던 공원에 갑작스레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의 주인이 누워있는 타마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통에 아이는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피부에 따끔따끔 박혀오는 시선이 신경쓰여 죽을 것만 같았다.

 

...멀리서 동이 트는 수 초의 시간동안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아저씨, 머리 치워.”

 

결국 짜증을 참다 못한 타마키가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남자의 등 뒤로 떠오르는 태양 때문인지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키가 자신의 갑절을 넘어가니 나이도 갑절로 많을 것 이라고 추측하여 아저씨 라는 호칭을 붙였다. 어린아이에 걸맞은 단순한 생각 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저씨’ 라는 호칭에 기분이 상했는지 투덜거리며 몸을 뒤로 물렸고, 그제서야 타마키는 평온을-

 

“시꺼, 아직 17살 이거든! ”

 

...찾지 못했다. 제 갈길을 가는 듯 했던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괴롭힘을 시작했다. –아저씨라는 호칭에 대한 항의도 대단했다- 오늘이 몇 월 몇 일 인지, 이름이 뭐냐는 등 온갖 질문 세례를 퍼부우며 괴롭히는 남자를 타마키는 끝까지 무시했다. 아무래도 미친 사람 같았다. 외진 공원이니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걸까,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타마키가 아예 무시 하겠다는 의미로 등을 돌려 눕자,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뒷목을 문지르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이내 저벅저벅,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들렸으나 그마저 얼마 가지 않아 멈췄다. 도망 칠 타이밍을 잡고 있던 아이는 살짝 눈을 떠 남자의 동태를 살폈다.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남자는 도로 건너편의 전자상가를 보며 굳어있었다. 공원의 건너편에 있는 전자상가의 유리창에선 매일 아침 방송되는 아침 뉴스가 틀어져 있었고, 젊은 여성 앵커가 밝은 목소리로 날씨 소식등을 알려주고 있었다. 타마키도 그곳에서 틀어주는 만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종종 보곤 했다. 남자가 왜 뉴스를 보며 저렇게 놀란 표정인지 알 순 없었지만 그건 지금 타마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틈에 도망쳐야 했다. 더 이상 이 곳에 있다간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았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벤치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남자가 뒤를 돌아봤고, 막 도약을 하려던 타마키와 눈이 마주쳤다.

 

...

 

파앗 하고 기세 좋게 뛰어나간 타마키는 자신의 발목 상태를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오른 발을 내딛은 순간 작은 몸이 휘청 하며 바닥으로 내뒹굴렀고, 주변으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

 

“...”

 

바닥에 엎어져 내적 창피함을 만끽하고 있는 타마키를 남자는 ‘뭐 하고 있는거야’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대로 기절한 척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순간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우와앗!!”

 

“윽, 우왁, 가만히-, 있어! 악, 아파!!”

 

성큼성큼 아이에게 다가온 남자가 인형을 들어올리듯 가볍게 타마키의 몸을 들어올렸다. 갑작스레 발이 지면에서 멀어지자 당황한 타마키는 전력으로 양 팔과 다리를 흔들었고, 손 끝에 잡힌 남자의 머리카락을 온 힘으로 뜯어냈다. 키 큰 남성이 어린아이와 함께 고성을 지르고 있는 것은 깨나 귀한 장면 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 장면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머리를 한움큼 뜯긴 남자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선 범인을 체포하듯 타마키를 뒤에서 끌어안아 팔을 결박한 채로 빙글빙글 돌았다. 눈에 장난기가 그득한 것을 보아 복수가 분명했다. 남자의 복수가 아주 효과적으로 먹혀들고 있는 타마키는 먹은 것도 없이 텅텅 빈 위장을 개워내기 직전이었다.

 

“어이-, 임금님 푸딩, 먹으러 가자.”

 

조금 진정을 한 남자가 외치자 세상이 돌아가고 있던 타마키가 벌떡 깨어나 남자를 돌아봤다.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분명 긍정의 표시였다.

 

“그럼 나 10개 사줘!”

 

“오케. 대신, 하루에 하나씩.”

 

타마키가 자그만 손바닥을 쫙 펴보이며 10개를 요구하자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낯선사람이 푸딩을 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된다는 엄마와 동생의 충고따윈 잊은지 오래였다. 푸딩을 주는 사람은 ‘일단’ 착한사람 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타마키였다.

 

 

 

*

 

 

“후응, 작어.”

 

푸딩 스푼을 입에 물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을 들은 타마키가 발끈 했다. 물론 자신은 눈 앞의 남자보단 훨씬 작았지만, 제 또래 아이들에 비해선 제법 큰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입에 가득 들어있는 달콤한 푸딩을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항의하는 마음보다 조금 더 컸기에 타마키는 조용히 남자를 째려보는 것 으로 항의를 끝냈다.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24시 편의점의 야외테이블에 앉아 타마키와 함께 푸딩을 음미하던 남자는 편의점과 함께 들린 약국에서 사온 하얀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반쯤 남아있는 푸딩에 박혀있던 스푼을 입에 물고 손을 뻗어 내용물을 뒤적거렸다. 소독약, 밴드, 크림형 연고, 압박붕대, 아이스팩. 손에 잡히는 소독약과 연고를 꺼내든 남자는 의자에 앉아 허공에 다리를 휘휘 저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있는 타마키의 앞에 쭈그려 앉아 100엔이 적혀있는 각진 포장지를 뜯었다.

 

타마키가 임금님 푸딩의 달콤함에 정신이 빠진 사이 재빠르게 양말을 벗겨낸 남자가 벌겋게 까진 무릎의 상처에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도망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신나게 흙바닥에서 구르며 생긴 영광의 상처였다. 따가운지 잠시 흠칫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별 다른 반항은 없었다. 상처에 꼼꼼하게 약을 발라주고 밴드까지 야무지게 붙여준 남자는, 다시 봉투를 뒤적거려 붕대와 아이스팩을 꺼내 퉁퉁 부어있는 발목에도 아이스팩을 대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응급처치에 불과한 정도였다.

 

“이거, 나중에 분명 또 아프니까.. .”

 

“당신, 뭐야?”

 

뭐하는 사람이야?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질문했다. 이런 종류의 친절함을 오랜만에 느껴본 아이는 안도하기는 커녕 푸딩 병이 비워져 갈수록 남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까진 무릎과 삐끗한 발목을 치료해 주고 푸딩까지 사주었다. 남자는 친절의 보답이 경계라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상한 듯 했으나 구겨진 미간은 금새 깨끗하게 펴졌다.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한 없이 경계해도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던 사람. 바보같이 정직하고 바보같이 자신을 받아주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이라면,

 

“..요정?.”

 

“...하아?”

 

이런식으로 얼버무리겠지.

 

“임, 임금님 푸딩의 요정. 항상 좋아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왔구.”

 

타마키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여느 아이들은 믿지 않을 것 이다. 요정이라니, 요즘 세상에 그런걸 믿는 아이가 있겠는가. 타마키 정도의 나이면 산타가 다 자신의 부모님 이라는 것도 아는 세대 였다. 하지만 타마키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진짜, 임금님 푸딩 요정님 이야?”

 

 

오늘은 요츠바 타마키의 생일 이었다.

 

 

 

타마키의 부모님은 단 한번도 산타가 되어주지 않았다. 생일에 온 가족이 모여 초를 끄는 아이들의 작은 꿈은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이는 한 없이 외로운 생일에 요정의 존재를 끊임없이 바라고 있었다. 왜 태어났냐며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 병상에 누워 자신의 생일도 잊어버린 어머니, 동생. 요정이라도 좋으니 순수하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존재를 바라고 있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타마키는 울었다. 소리내어 울었다. 남자는 그런 아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요정은, 뭐든 다 알구있어. 생일 축하해. 음... 꼬마 요츠바 군.

 

 

 

*

 

 

 

“푸딩의 요정이면 맨날 푸딩만 먹어?”

 

“푸딩의 요정도 하루에 하나밖에 못먹어. 혼나니까.”

 

남자는 타마키를 등에 업고 한참동안 공원을 돌아다녔다. 아직 이른 봄. 화단에는 화려한 색의 꽃들이 잔뜩 피어있었고, 나무에도 아직까지 벚꽃이 조금씩 달려 잎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목마를 태워 벚나무 위로 올려주기도 하고, 나란히 호수의 난간에 매달려 헤엄치는 비단 잉어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먹다 남은 임금님 푸딩에 초를 꽂고 소소하게 생일파티도 한 타마키는 이제 남자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남자의 목에 두른 팔을 꼼지락 거리며 푸딩의 요정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었다. 요정보다 더 높은 녀석이 있는거야? 남자가 대답한다. 높은 녀석은 아니구, 음.. 무서운 녀석.

 

“요정 주제에 타바스코랑 스크류 드라이버를 들고다녀. 진-짜 무서운 녀석이야. 조심해.”

 

“...”

 

갑작스레 대화가 끊어지자 남자가 고개를 틀어 아이를 살짝 올려다 보았다. 자신의 등에 업힌 아이의 시선이 한군데 고정되어 있었다. 시선의 끝에는 커다란 곰인형 탈 과 토끼 머리띠를 쓴 젊은 남성이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다정하게 부모님의 손을 잡고 풍선을 받아가는 아이들의 얼굴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타마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남자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재촉해 남자는 풍선을 들고있는 인형탈에게 다가갔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 색, 온갖 무지개 색의 풍선을 들고있던 인형탈이 오버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남자의 등 뒤에 업혀있는 타마키에게 연한 하늘색 풍선을 건내주었다. 풍선이 제 손에 쥐어지자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진 타마키를 바라보던 남직원이 작게 웃었다.

 

“아하하, 형 하고 동생이 정말 판박이네. 자, 형님 분도 하나 받으세요!”

 

잘못된 정보에 반박을 할 틈도 주지 않은 직원이 아이의 것과 똑같은 풍선을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연한 하늘색 풍선두개가 타마키의 머리 언저리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바람이 간간히 불어 올 때 마다 두 개의 풍선이 사이좋게 휘날렸다. 남자는 놀란 타마키의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그러면 좋았을텐데.

 

그치? 그리고 아이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 자신이 가장 바랐던 것.

 

 

연한 하늘색 풍선의 뒤로 붉은 하늘이 몰려오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

 

 

 

 

“... 푸딩 요정님.”

 

 

진짜 우리 형 해주면 안돼?

 

타마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손목에 풍선이 묶인 작은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꿈인걸 알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일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이렇게 상냥한 생일을 겪어본적이 없었다. 아야도 이런 생일을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다. 엄마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벌써 자잘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스락 거리는 비닐 봉투를 추스르며 남자가 쭈그려 앉았다. 아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미안해.”

 

“나한테 무지무지 소중한 사람들. 내가 없으면 우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바보같은 파트너, 내가 없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많어. 그러니까, 미안.”

 

타마키는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하루의 꿈 일 뿐이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아이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남자는 제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의 부드러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너는, 우리는, 여기서 멈춰버렸구나. 어린아이 그대로 몸만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그리구, 나아아아-중에, 전부, 너한테 생길 소중한 선물들이야.”

 

바보같은 파트너도, 내가 없으면 안되는 많은 사람들도. 다른것과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 10년 후의 네가 받을 선물. 남자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생일 축하하자, 우리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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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 타마키‘가, ’요츠바 타마키‘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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