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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나나세 리쿠 & 현재의 쿠죠 텐

Write. 에델(@Dear_Weiss)

악몽

 

 

 나나세 리쿠는 요즘 들어 악몽을 자주 꾸었다. 악몽은 늘 똑같은 패턴이었다. 리쿠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그 옆에서 그의 쌍둥이 형인 나나세 텐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주었는데 얼마 안 있어 텐이 지쳤다며 등을 돌려 쿠죠 타카마사란 남자를 따라갔다. 뒤에서 목이 터져라 텐의 이름을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고 리쿠의 곁을 떠나갔다. 점점 멀어져 가는 텐을 보며 몸이 금방이라고 발작을 일으킬 거 같았다.

 꿈에서 깨고 나면 땀에 흠뻑 젖은 몸 때문에 으슬으슬 떨려 왔다. 이젠 익숙해질 만한데 텐 형이 떠나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같은 곳에 함께 있었고 태어나서도 함께 있었다. 같은 유치원에 같은 날 들어 갔고, 초등학교도 그랬다. 앞으로도 함께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이제 내 상상에 불과했다. 텐 형이 떠난 다음, 긴 입원 끝에 간 학교에서 텐 형의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전학 갔다.’라고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텐 형의 전학, 나의 재학. 궁금증을 품은 아이들이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텐 형은 쿠죠 타카마사란 사람을 따라갔어.’ 이 말을 해버리면 텐 형이 정말 나를, 우리 가족을 버린 것이 될까봐 무서웠다. 텐 형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며칠만 지나면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같이 일어나고, 같이 등교하고, 같이 자고, 내가 아프면 텐 형은 내 옆에 있어 줄 것이다.

 그렇게 믿었지만 텐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쿠죠 타카마사는 텐 형을 어디로 데리고 숨은 건지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 어디에서도 텐 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텐 형의 자리는 다른 아이가 채웠고, 이젠 집에서도 텐 형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특별히 정한 규칙은 아니었지만 형의 이름을 꺼내면 우리 가족에서 상처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텐 형이 돌아올까. 내가 죽을 만큼 아프면 돌아올까? 큰 수술을 받고 하루 종일 정신도 못 차리면? 그럼 다시 돌아와 주지 않을까? 텐 형은 착한 사람이니까 내가 아프다고 하면 바로 달려와 줄지도 모르는데 다시 내 옆에서 춤추고 노래해 줄지도 몰라

 그 날 이후로 텐 형에게는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텐 형은 트리거의 센터로 데뷔하게 되었다. 역시 텐 형은 아픈 나를 돌보는 것에 지친 거라고 생각했다. 화면 속에서 보는 텐 형은 너무 화려하고 멋있었다. 웃고 있는 텐 형의 눈 속에는 내가 없는 것 같았다. 텐 형을 보고 있자면 그 날의 텐 형을 떠올리게 했다.

더 이상 텐 형의 기억 속에 나는 없었다.

 

 

 쿠죠 텐은 요즘 들어 악몽을 자주 꾸었다. 악몽 속에는 늘 어린 리쿠가 나와서 저를 너무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꿈이 며칠 동안 계속 되었을 때, 결국 못 참고 자신이 먼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리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때 왜 떠난 거야?’ 제 안에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다시 본 리쿠의 눈은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그렁그렁했다. ‘내 시중을 강요받는 게 싫은 거였지?’ ‘텐 형이 떠나고 나서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리쿠의 말이 계속해서 텐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 날 이후에 난 엄청 아팠는데… 옆에는 텐 형이 없었어. 한 번도 날 보러와 주지 않았어. 그 동안 텐 형에게 나는 없었던 거야.’ 그 말 한 마디에 텐이 무너져 내렸다. 아니야. 널 잊은 게 아니야 리쿠. 아무도 잊지 않았어. 엄마도, 아빠도, 모두 기억하고 있어. 텐이 한 발 한 발 리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훨씬 작고 연약한 리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리쿠. 너를 위해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아픈 너를 돌보는 것이 싫었던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히려 너를 위해 노래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어.

 텐이 어린 리쿠를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지금껏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터져 나오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의 리쿠였다면 참을 수 있었을까. 텐 앞에서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리쿠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약해졌다.

‘거짓말. 텐 형은 우리 가족을 잊었어.’ 서럽게 말 하는 리쿠의 어깨에 계속 얼굴을 묻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전부 기억 해. 우리가 함께 한 모든 날들을 기억하고 있어. 정말 보고 싶었어. 하지만 전하지 못 했어. 사랑하는 내 동생. 내 반쪽. 리쿠.

단 한 번도 너를 잊은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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